아직 새벽 어둠이 채 가시기도전에 창밖에서 뎅그렁 뎅그렁 하는 쇠방울 소리가 들린다. 아침마다 나를 깨우는 워낭 소리다.내 방 창문이 침대 높이와 거이 맞닿아 있어 이따금씩 목에 방울을 매달은 이곳 흰소와 누워있는 내가 서로 눈이 마주칠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이 소에게 ‘쑤어 쑤다이” 하며 아침 인사를 건넨다. 집 밖으로 이 미터 남짓 간격을 두고 초록 잎이 풍성한 대나무 울타리가 둘러쳐 있는데 이 너머로 축구장의 두세배 쯤 되는 넓은 들판이 있다. 이곳에서 캄보디아의 흰소들이 새벽 부터 나와서 하루종일 풀을 뜯는다. 대여섯 마리 일때도 있고 어떤때는 열 두어 마리가 떼를 지어 나올 때도 있다. 이 소들이 대나무 잎도 즐겨 먹기 때문에 내 방 바로 밖의 대나무 가지사이로 이들이 자주 얼굴을 드리민다, 이 워낭소리 알람으로 하루를 여는 나는 아침 기도를 드린후 부지런히 조깅화를 신고 밖으로 나간다. 하루 중 제일 활동하기 좋은 골든타임이다. 이렇게 캄보디아의 하루는 미처 어둠이 가시기 전 부터 시작된다. 관공서와 학교도 7시부터 시작하여 11시면 오전 업무가 끝난다. 그리고 오후 2시에 다시 문을 연다. 섭씨35도를 오르내리는 기후에 적응한 크메르인들의 적자생존 방식이다.
나는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북서쪽으로 20키로 쯤 떨어진 포짼째이라는 마을에 살고있다. 미국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출신 한인 목회자들이 세운 WTCS (Westminster Theological College & Seminary) 에서3학기째 일하고있다. 삼사십명 되는 기숙 학생들이 모든 커리큘럼을 영어로 교육 받고있다. 봉사정신으로 자비를 들여 오는 교수들이 매 학기마다 미국에서 건너와 강의를 하고있다. 나는 이 영어수업을 힘들어하는 학생들에게 오전과 오후 각각 2시간씩 영어를 가르치고있다.
이 학교가 마을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건물 옥상에서 내려다보면 사방으로 평화로운 농촌풍경이 끝없이 보인다. 산이 없는 이곳은 키 높은 팜트리와 야자나무가 띄엄띄엄 서있는것 외에는 지평선까지 아무 것도 없는 넓은 벌판 뿐이다. 어찌보면 그 단조로움이 지루하여 금방 싫증이 날만 도 한데 난 오히려 그 단순한 여백이 주는 이국적 공간에 더 매료되어 있다. 나의 산책로는 덤불을 이루어 울창히 우거진 대나무와 몸피가 하얀 까사나무가 빙 둘러 서있는 호숫가로 이어진다. 이 까사나무는 바이칼에서 보았던 자작나무와 너무도 비슷하다. 시베리아의 추위를 이기고 하얀몸체를 하늘로 죽죽 내뻗은 자작나무와 더위에도 사시사철 성장을 멈추지않고 자라나고 있는 저 열대의 나무가 서로 닮아 보이다니! 참 신기하다. 호수와 맞닿아 있는 벌판 길을 걷다보면 자주 소 떼와 만나게 된다. 뿔이 멋지게 높이 솟은 가장 황소 뒤를 어미소와 송아지들이 일가를 이뤄 뒤를 따르고있다. 갓 빨아 햇빛에 널은 홋이블 처럼 털빛이 하얀 어린 송아지가 어미소의 부풀어오른 젖을 핥으며 종종 걸음으로 쫓고있는 장면을 보게되면 나는 가던 걸음을 멈출 수 밖에 없다.
전 국토가 거의 산이 없고 지면이 평평한 여기 캄보디아에서는 어느 집이든지 우기 때를 위해 자기 땅을 돋구기를 원한다. 건기 때 땅을 사면 안된다는것이 일반 상식이다. 그래서 벌판을 파서 흙장사를 하기때문에 여기저기 많은 곳에 인공으로 파놓은 호수가 즐비하다. 이제는 세월이 많이 흘러 언뜻 보면 사람의 흔적이 지워진 멋진 호수로 변해 있지만 사실은 흙장사가 파놓은 물웅덩이다. 그 넓이가 하도 어마어마하게 커서 물웅덩이 라고는 상상하기가 어렵다. 잠실 운동장의 열 배는 더 될것같다. 한번은 건기때 이 호숫가를 걷다가 폭우에 둑이 무너져 경사가 완만하게 비탈이 나있어서 나는 호수 밑바닥 까지 내려가 본적이 있다. 그 넓은 바닥에 가운데만 물이 조금 고여 있을뿐 나머지 부분은 지구 생성시 처럼 비바람과 뜨거운 열기에 이곳의 붉은 점토흙이 몸을 비틀어 기기묘묘한 형태를 자아내고 있었다. 나는 지나가는 곳곳마다 그랜드캐년, 울산바위, 채석강 이라고 나만이 부르는 지명을 붙여 놓았다. 미니어쳐로 칭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챙이 넓은 모자와 커다란 막대기를 들고 붉은 언덕을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다니는 내 모습이 마치 고적답사를 하는 인디아나 존스 같을 거라는 생각이들어 혼자서 싱긋 웃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짖어대는 개나 풀숲의 파충류들을 만날때 요긴하다고 주변 사람들이 권하여 지팡이 삼아 들고 다니는 막대기 이지만 난 아직 이 무기를 한번도 사용해 본적이 없다. 이 사람들은 아예 산책 자체를 하지말라고 적극 말리지만 이것을 멈추면 난 이곳 생활을 지탱해 나갈 자신이 없다. 운동을하여 얻는 힘과 에코테라피가 주는 새로운 감성이 내게 꼭 필요 하기 때문이다.
이 저수지는 너무 넓어서 아침마다 한 바퀴를 다 돌기가 어렵다. 시간에 쫓기지않는 주말에 빠르게 걸어도 한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나는 한시간 미만으로 산책을 마치고 서둘러 오전 수업 준비를 한다. 아침식사로는 삶은 계란과 찐고구마나 감자 그리고 사과를 먹고 저녁은 조리를 한다. 처음 일년간은 학생들과 함께 학교식당에서 여기 음식을 먹었는데 위생에 문제가 있었는지 배탈이 나서 병원을 드나든적도 여러번 있었다. 다른 교수들은 잘 적응하는데 나는 또 이곳의 향신료를 도저히 참고 먹을 수 가 없다. 이 음식 문제는 건강과 직접 연관이 되어서 주변사람을 의식해 억지로 감행 할 수 있는 것은 아닌것 같다. 식사를 같이 안하면 교제가 소원해지기 쉬워 공동체 생활에 소외 되기가 십중팔구다. 그래서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그래도 감사한것은 교수 아파트 시설이 아주 좋아서 한국에서와 별반 다르지않게 편히 지낼 수 있다는 것이다. 캠퍼스 안에 있어서 첫째 안전에 문제가 없고 백미터만 걸으면 강의실이다.
기숙사 저녁식사가 5시어서 나도 가능하면 그시간에 맞추도록 노력하고 있다. 자고 깨는 리듬 이라도 공동체와 같아지기 위해서다. 저녁시간에는 일주일에 두번 옆 동네 교회 신자 두 명에게 피아노 레슨을 해주고 있다. 지난 봄 한국에서 키보드를 사다 주었더니 너무 감사해 하면서 연습을 착실히 해오고있다. 일 이년동안 계속 쉬지않고 익히면 찬송가 반주는 어렵지 않게 해 낼것이다. 영어 교육과 달리 피아노 레슨은 가시적으로 진도가 나가는 성취감이 커서 이 또한 내게는 큰 즐거움이다. 이 교회가 건물을 짖다가 중단을 하고있었다. 마음이 짠해 약간의 건축 헌금을 했더니 천정공사를 못해 함석지붕 골조가 훤히 보이던 곳에 몰딩을 대고 말끔하게 마감해 놓았다. 정말 얼마 안되는 액수인데 이곳에선 이렇게 크게 씌인다. 이 작은 일에 큰 기쁨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린후 나는 다시 워낭을 기다리려 잠자리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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